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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날짜 2026-01-04

본문: 창세기 32:24-31

[도입: 얍복 나루의 밤, 홀로 남은 자]

사랑하는 앤텔롭밸리 한인교회 성도 여러분,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첫 주일 아침,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십니까?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으로 설레십니까, 아니면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인생의 문제들로 인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십니 까? 오늘 우리는 성경 속 한 사람의 가장 길고도 어두웠던 밤으로 함께 들어가 보려 합니 다.

 

그 주인공은 야곱입니다. 들리십니까? 얍복강의 거친 물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옵니다. 바람은 차갑고, 주위는 칠흑같이 어둡습니다. 그 강가에 한 남자가 홀로 앉아 있습니다. 그는 지금 인생 최대 의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20년 전,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쳤던 그가 이제 고향으 로 돌아가려는데,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자기를 죽이러 온다는 소식을 들 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평생을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생존의 달인'이었습니다. 형의 발뒤 꿈치를 잡고 태어났고,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샀으며,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도 기 가 막힌 꾀를 써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머리가 비상했고, 계산이 빨랐으며, 악착같이 제 몫을 챙겨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 그 모든 성공의 공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400명의 군대 앞에서 자신의 돈도, 가축도, 비상한 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재산을 두 떼로 나누고, 사랑하는 아내들과 자식들마저 먼저 강을 건너보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 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창 32:24) '홀로 남았다.' 이 말이 왜 이리도 가슴 시리게 다가올까요? 어쩌면 이것이 우리 이민자 의 삶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 아닐까요? 고국을 떠나 낯선 미국 땅에 정착하면서, 우리 는 얼마나 많이 '홀로 남는 밤'을 보내야 했습니까? 언어의 장벽, 신분의 불확실함, 그 리고 경제적인 파도 앞에서 우리는 늘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외로움과 싸워야 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가장의 무게, 자녀들을 키우며 삼켜야 했던 눈물, 그리고 지난 2 년 우리 교회가 겪어야 했던 그 아픔의 시간들... 어쩌면 지금 우리 중 누군가는 야곱처 럼 캄캄한 얍복 나루에 홀로 앉아, 다가올 내일의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야곱이 홀로 남은 그 절망의 밤, 그 적 막을 깨고 누군가가 야곱을 덮칩니다. [전개: 찾아오신 씨름꾼과 하나님의 목적] 갑자기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야곱의 허리춤을 움켜잡습니다. 야곱은 소스라치게 놀라 반격합니다. "에서가 보낸 자객인가?" 야곱은 죽을힘을 다해 저항합니다. 두 사람은 모 래바닥을 뒹굽니다. 거친 숨소리와 신음 소리가 강가에 울려 퍼집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 싸움은 자객의 기습이 아니었습니다. 에서가 보낸 사람도 아니 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다가, 나중에 그가 바로 '하나님'이셨음을 드러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지금 야곱은 형 에서 때문에 죽을까 봐 무서워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를 위로해주시기는커녕 오히려 싸움을 걸어오신 것입니다. 도대체 왜 하나 님은 곤경에 처한 야곱을 공격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야곱에게 있어 진짜 문제는 '형 에서'가 아니라, 바로 '야곱 자신 '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야곱을 죽이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야곱 속에 있는 '깨어지지 않는 고집', '내가 주인 된 자아'를 죽이러 오신 것입니다. "나는 내 힘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내 꾀로 위기를 넘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내 인생에 간섭하지 마시고 저기 400명 군사나 막아주세요!" 야곱은 이렇게 외치며 하 나님을 밀어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붙드시고, 야곱은 뿌리칩니다. 이 지루한 씨름이 밤새도록 이어집니다.

 

이것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는 기도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이 문제만 해결해 주세요. 돈 문제, 건강 문제, 자식 문제만 해결해 주시면 됩니다." 하지 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 그 문제가 아니다. 네가 변해야 한다. 네가 나를 신뢰 하지 않고, 여전히 네 힘과 네 경험을 의지하고 있는 그 교만이 깨져야 한다." 우리는 주님께 복을 달라고 하지만, 사실은 주님과 주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릅 니다. 내가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이 손 놓지 않겠다고 버티는 그 고집... 야곱 은 정말 지독하게 강했습니다. [절정: The Hammer, 환도뼈가 부러지다]

 

성경은 "날이 새려 하매"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이 힘이 없어서 못 이기셨을까요? 아닙니다. 아빠가 어린 아들과 씨름할 때 져주는 것 처럼, 하나님은 야곱이 스스로 항복하기를 기다려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끝까 지 버팁니다. 결국, 하나님은 마지막 방법을 쓰십니다. 야곱의 허벅지 관절, 즉 환도뼈를 치십니다. "딱!"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끔찍한 통증이 야곱을 덮칩니다. 여러분, 환도뼈가 어디입니까? 일명 고관절로 우리 몸을 지탱하는 중심이자 힘의 근원 입니다.

 

저는 현재 양로 호텔에서 어르신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시니어 어르 신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낙상 사고'입니다. 건강하시던 분들도 넘어져서 고관절(환도뼈)을 다치시면, 그때부터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침대를 떠날 수 없게 됩 니다. 식사도 누군가 가져다주어야 하고, 화장실도 갈 수 없어 기저귀를 차야 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절대적 의존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하게 그곳을 치셨습니다.

 

야곱이 평생 믿고 의지했던 자신의 건강, 자신 의 능력, 도망칠 수 있는 두 다리의 힘... 그 힘의 원천을 완전히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20세기의 선지자라 불리는 A.W. 토저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크게 쓰시려 할 때, 그를 깊이 상처 입히지 않고 쓰시는 일은 거의 없다." 하나님이 야곱의 뼈를 부러뜨리신 것은 그를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그를 포기하지 않 으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쓰러집니다. 이제 그는 일어설 수도,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로 이 순간,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하나님과 싸워 이기려고, 하나님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 런데 뼈가 부러지고 힘이 빠지자, 야곱의 태도가 180도 바뀝니다. 밀어내던 손이, 이제 는 하나님을 꽉 붙잡는 손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절규하듯 외칩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 32:26) 이것은 협박이 아닙니다. 이것은 처절한 항복 선언입니다. "하나님, 이제 내 환도뼈가 부러졌습니다. 나는 도망갈 다리가 없습니다. 내 꾀도, 내 재산도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책임져 주지 않으면, 주님이 나를 불쌍 히 여겨 주지 않으면, 나는 여기서 죽습니다. 제발 나를 떠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2년 우리 앤텔롭밸리 한인교회에 있었던 아픔들... 우리가 겪은 상실감과 혼란들. 어쩌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환도뼈를 치신 사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문제없다"는 자부심, "지금 이대로만 유지하자"는 우리의 계획, 그리 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서로에게 향했던 날 선 마음들... 그 결과 우리가 인 간적으로 의지했던 모든 것들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이 아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그 아픔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이 새해 아 침, 우리 모두가 야곱처럼 납작 엎드려 "주님, 우리에게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 교회를 다시 세우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매달리게 하기 위 한, 하나님의 가슴 아픈 사랑의 매였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말: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그리고 브니엘] 매달리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너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니? 너의 정체는 무엇이니?"라 고 물으시는 겁니다. 야곱은 뼈아픈 고백을 합니다. "야곱이니이다." 이 짧은 대답 속에 야곱의 지난 97년 인생이 다 담겨 있습니다. '야곱', 발뒤꿈치를 잡 는 자, 속이는 자, 빼앗는 자. "하나님, 저는 야곱입니다. 저는 사기꾼입니다. 겉으로는 번듯해 보이지만 속은 여전히 내 욕심을 위해 사는 야곱입니다. 내 힘으로 아등바등 살아온 죄인입니다." 이 정직한 자기 고백, 철저한 회개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창 32:28) '이스라엘',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여러분, 피조물이 창조주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항복'뿐입니다. 자녀가 울며 매달릴 때 부모가 져주듯이, 하나님은 뼈가 부러져 울며 매달리는 야곱에게 "그래, 네가 이겼 다. 너는 이제 사기꾼이 아니라 내 자녀다. 내 왕자다. 이제부터는 네가 싸우는 것이 아 니라 내가 너를 위해 싸울 것이다"라고 승리를 선언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얍복 강가의 이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그토록 강력한 복음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 자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가 짙게 드 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홀로 남아 씨름하던 그 밤,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습니다. 그의 힘과 자랑을 꺾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를 살리기 위해서였 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역사의 저편, 겟세마네 동산의 밤을 기억하십니까? 그곳에도 한 분이 홀로 남아 밤새도록 씨름하며 기도하셨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이번에는 당신 아들의 기도 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외면하셨습니다. 얍복 나루에서는 야곱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이 져주셨지만, 십자가 위에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철저하게 패배시키셨습니다. 야곱의 환도뼈가 부 러진 것처럼, 예수님의 온몸은 십자가 위에서 상하고 찢기셨습니다.

 

야곱이 다리를 절 게 된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의 몸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못 자국과 창 자국이 남 았습니다. 왜입니까? 죄인인 '야곱' 같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인 '이스라엘'로 만들기 위해서였습 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의 해머를 예수님이 대신 맞으셨기에, 우리는 야곱처럼 뻔 뻔하게 하나님을 붙잡고 "나를 축복해 주십시오!"라고 외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 고집을 꺾고 항복할 수 있는 근거는 내 의지가 아닙니 다. 나를 위해 대신 깨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때문입니다.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나를 '이스라엘'이라 불러주시는 그 은혜 때문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이 오늘 우리의 굳어진 환도뼈를 부드럽게 녹여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및 적용: 절뚝거리며 걷는 2026년] 야곱은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죽을 줄 알았던 그 자리에서 생명의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1절, 성경은 아주 아 름다운 풍경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창 32:31) 저는 이 장면을 상상할 때마다 가슴이 뜁니다. 긴 밤이 지나고 찬란한 아침 해가 얍복 강 위로 떠오릅니다. 그 햇살 속으로 한 사람이 걸어갑니다.

 

그런데 그의 걸음걸이가 예전과 다릅니다. 절뚝, 절뚝... 그는 다리를 젋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는 실패자입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십시오. 이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는 영광 스러운 훈장입니다. 어젯밤까지 야곱은 두 다리로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은 다리를 절기에, 지팡이를 의지하지 않고는, 아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절뚝거리며 어디로 갑니까? 도망가지 않습니다. 자기를 죽이러 오는 형 에서를 향해 정면으로 나아갑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야곱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내 다 리는 부러졌다. 이제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산다." 이 확신이 그를 담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2026년 새해를 맞이하는 여러분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좀 절뚝거립시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꼿꼿했습니다. 너무 내 주장이 강했고, 내 경험이 옳았고, 내 자존 심이 살아서 펄펄 뛰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하실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 서로 부딪히고 아팠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앞으로 3개월간 여러분과 함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다시 이 교회에 돌아오면서 결심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능력 있는 목사'로 서지 않겠 다. 나는 '절뚝거리는 목사'로 서겠다." 저 역시 지난 시간, 하나님께서 저의 환도뼈를 치시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음을 철저히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제 지혜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듭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다 잘될 것입니다", "부자가 될 것입니 다"라는 솜사탕 같은 위로를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저는 여러분과 함께 얍복 나루에 서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굳어진 자아, 우 리의 교만,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던 그 환도뼈가 깨어지는 은혜를 구하고 싶습 니다. 우리 장로님들, 권사님들,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님들. 혹시 지금 실패의 자리에 있다고 느끼십니까? 이민 생활의 고단함 속에 홀로 남겨졌다고 느끼십니까? 두려워하지 마십 시오.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자리입니다. 나의 힘이 꺾이는 그 실패의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브니엘의 아침이 됩니다.

 

우리는 이제 '절뚝거리는 교회'가 됩시다. 내 힘자랑하지 않고, "주님, 저는 약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필요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서로를 부축해 주는 교회.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약해 보여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 너는 예수의 흔적을 가진 이스라엘이다"라고 인정하시는 가장 강한 교회가 되기를 소 망합니다. 2026년, 야곱의 꾀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기도로 나아갑시다. 우리의 환 도뼈가 부러진 그 자리에서, 찬란한 부활의 해가 떠오르는 것을 목격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얍복 나루에 선 야곱을 보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셔 서, 그의 가장 강한 부분, 그가 가장 의지하던 환도뼈를 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건드리고 계시는 여러분의 '환도뼈'는 무엇입니까? 끝까지 포 기 못 하는 내 자존심입니까? 내 경험입니까? 아니면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고집입니까? 우리 이 시간, 두 손을 가슴에 얹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반응합시다. 더 이상 하나님 과 싸우지 맙시다. 하나님을 이기려 들지 맙시다. 대신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대신 깨 어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의 항복을 선언합시다.

 

우리 이렇게 두 가지 제목으로 함께 소리 내어 기도하겠습니다. 첫째, 나의 고집과 자아를 깨뜨려 달라고 기도합시다. '주님, 저는 야곱입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했지만, 속에는 여전히 계산이 빠르고 내 유익만 구하는 사기꾼이 들어있습 니다. 지난 2년, 교회의 아픔 속에서도 내 의만 주장했던 교만을 용서해 주소서. 오늘 말씀의 해머로 나의 굳은 자아를 쳐서 깨뜨려 주시옵소서!‘ 둘째, 이제는 예수님만 의지하며 절뚝거리며 걷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내 힘이 빠진 그 자리에 주님의 능력을 채워주소서. 2026년, 내 두 다리로 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에 기대어 걷는 '이스라엘'이 되게 하소서.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은혜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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