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 날짜 | 2025-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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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누가복음 8:4-15
사랑하는 앤텔롭밸리 한인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우리가 잠 시 떨어져 있었던 시간이 2년 남짓 되었습니다. 다시 이 강단에서 여러분의 얼굴을 뵙 게 되니,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까지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참으로 깊고 오묘함을 느끼게 됩니다. 다시금 이 앤텔롭밸리라는 땅에서, 우리를 '동역자'로 다 시 만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단순히 '과거의 추 억'을 나누기 위해 만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다시 이곳에 보내시고,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부르신 데에는 분명한 '영적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온 시간, 그리고 이 척박한 이민 땅에서 살아온 세월이 결코 짧 지 않습니다. 50대, 60대를 넘어 70, 80을 바라보는 인생의 여정 속에서 우리에게 생긴 한 가지 영적인 습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익숙함'입니다. 매주 드리는 예배, 늘 듣던 찬양, 너무나 잘 아는 본문 말씀... 이 익숙함은 우리에게 편 안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껍질이 두꺼운, 묵은 땅처럼 딱딱하게 굳 어버리게 만듭니다. 이곳 앤텔롭밸리에 사시는 분들은 흙을 만지는 기쁨을 아실 겁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 이 되면 마당 한켠에 작은 텃밭을 일구십니다. 고추 모종도 심고, 방울토마토, 상추, 깻 잎을 심어 보셨을 겁니다. 농사를 지어보신 분들은 다 아는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추수를 위해 농부가 가장 먼 저, 그리고 가장 공들여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씨앗을 뿌리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물 을 주는 일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농부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땅을 준비하는 것", 즉 "묵은 땅을 갈아엎는 일"입니다. 한국의 '역전의 부자 농부'라는 방송에 새싹보리로 큰 성공을 거둔 농부의 이야기가 나 온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매년 봄이 되면 밭을 완전히 갈아엎습니다. 그리고 씨를 뿌리 기 전, 흙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고, 심지어 흙을 먹어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건강한 열매를 위해서는 땅의 상태가 제일 중요해. 이 땅이 살아 있어야 씨앗이 자라지.“ - 2 - 그렇습니다. 땅이 준비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씨앗을 심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단단 하게 굳어버린 땅에 씨앗을 뿌려 보십시오. 들어가지도 못하고 튕겨 나갑니다. 돌이 많 은 땅에 뿌려 보십시오. 싹은 나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해 금세 말라 죽습니다. 문제는 씨앗이 아닙니다.
문제는 언제나 '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8장의 말씀은 너무나 유명한 '씨 뿌 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당 장의 '영적 진단서'로 다가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시간, 농부의 심정으로 저와 여러분에게 묻고 계십니다. "수 십년의 이민 생활 동안, 수십 년의 신앙생활 동안 ”우리 마음은 여전히 부드러운 옥토입니까? 아니면 생존을 위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딱딱하게 굳어버린 길가가 되었습니까?“ 우리는 지난 시간, 무언가를 열심히 '하려고' 했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봉사하고, 시스 템을 만들려 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해집시다.
내 마음의 밭이 나의 고집과 염려로 딱딱 하게 굳어 있는 상태에서의 그 열심들이, 과연 생명의 열매를 맺었습니까?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멈춰라. 그리고 먼저 너희 마음을 기경하라." 앞 으로 저에게 주어진 3개월의 시간은, 무언가를 더 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의 굳어 진 마음 밭을 말씀의 쟁기로 갈아엎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의 마음 밭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정직하게 직면하고, 어떻게 해 야 다시 생명의 열매를 맺는 옥토가 될 수 있을지,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1: 우리의 실존 - 스스로 옥토가 될 수 없는 땅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는 씨 뿌리는 농부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농부가 씨를 뿌리는 땅의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들을 통해, 오늘 앤텔롭밸리 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마음 밭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은 과연 어떤 상태인지 점검하는 심정으로 말씀을 보겠습니다? 1. 첫 번째 땅: 길가 - 밟히고 굳어진 마음 예수님은 첫 번째 마음을 '길가'라고 하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씨를 뿌리는 자가 그 - 3 -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 고" 여기서 '밟혔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카테파테데'입니다. 이는 한 번 밟힌 것이 아니 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반복적으로 밟아 아주 딱딱하게 다져진 상태를 말합니다. 저는 이 단어를 묵상하다가, 우리 이민 1세대 성도님들의 삶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40 년, 얼마나 치열하게 사셨습니까? 낯선 땅, 서툰 언어, 인종차별, 그리고 먹고사는 생존 의 문제... 세상이 우리를 얼마나 많이 밟고 지나갔습니까?
그 고단한 삶을 버텨내느라 우리 마음에는 굳은살이 박였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훈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그 굳은살이 문제입니다. 마음이 너무 단단해져서 말씀이 뚫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아, 저거 다 아는 얘기야", "나도 옛날엔 다 해 봤어" 하며 튕겨냅니다. 이것이 바로 '길가'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 요“ 우리는 단순히 마음이 굳었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이것이 '영적 전쟁'이라고 하십니 다. 우리가 말씀에 냉소하는 그 순간, 사탄은 -> 즉시 와서 생명의 씨앗을 채갑니다.
익숙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영적 무감각,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실존입니다. 2. 두 번째 땅: 바위 - 감정의 뿌리가 얕은 마음 (The Rock) 두 번째는 '바위(페트라)'입니다. 6절을 보면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라고 합니다. 여기서 '습기'는 헬라어로 '이크마다'인데, 이는 식물의 생명을 유지하는 '근원적인 수분'을 뜻합니다. 이 밭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3절을 보면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라고 합 니다. 반응이 빠릅니다. "목사님 설교가 너무 은혜롭습니다!", "이번엔 우리 교회가 정말 잘 될 것 같습니다!" 하며 기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냉정하게 진단하십니다.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여기서 '배반한다'는 단어 '아피스탄타이'는 '거리를 두다', '철수하다'라 는 뜻입니다.
- 4 -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뜨거워지는 것을 믿음이라고 착 각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 조금만 갈등이 생기면, 내 자존심이 조금만 상하면, 우리는 즉시 마음의 문을 닫고 뒤로 물러났습니다. 왜입니까? 흙 밑에 거대한 '바위'가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관계적 트라우마'라는 바위가 있습니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 이 두려움의 바위가 말씀이 뿌리 내리는 것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싹이 난 것처 럼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여전히 '나를 보호하려는 자아'가 꿈쩍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 이것이 우리의 두 번째 실존입니다. 3. 세 번째 땅: 가시덤불 - 두 마음을 품은 상태 마지막 세 번째, 어쩌면 가장 심각한 땅은 '가시덤불'입니다. 7절과 14절을 보십시오. 씨앗이 떨어졌는데,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다고 합니다. 14절은 그 가시의 정 체를 정확히 말합니다.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입니다.
여기서 '막았다'는 단어 '쉼프니고'는 '숨통을 조이다', '질식시키다'라는 무시무시한 뜻입 니다. 그리고 '염려'라는 단어 '메림나'는 '마음이 찢어지다', '나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가 겪었던 지난 아픔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 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배도 드립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마음 한켠에는 "돈이 있어야 안전하다", "노후가 보장되어야 평안하다"는 '맘몬의 신앙' 이 가시덤불처럼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밭에 밀도 심고 가시도 함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하십니다. 가시덤불은 반드시 말씀의 숨통을 조여버립니다.
결국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가 됩니다. -> 열매 맺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늘 잎만 무성한 채 멈춰버린 상태. 이것이 우리의 세 번째 실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왜 오랜만에 만난 여러분께 이런 아픈 이야기를 합니까? 농부가 밭을 갈아엎으려면, 먼저 내 땅이 얼마나 딱딱한지, 어디에 돌이 박혀 있는지, 어떤 가 시가 자라고 있는지 '직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돌을 골라내고 가시를 뽑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봉사도 더 해보고, 헌금 - 5 - 도 더 해봤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내 힘으로는 이 묵은 땅을 기경할 수 없 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절망이자, 솔직한 고백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늘 설교의 핵심은 '땅'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옥토가 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농부'와 '특별한 씨앗'을 보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땅에서 씨앗으로 돌려봅시다. 본론 2: 복음의 역설 - 땅을 변화시키는 '씨앗'의 능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 밭이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져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길가처럼 딱딱하고, 바위처럼 얕고, 가시덤불처럼 복잡합니다. 세상의 농 사법대로라면, 이런 땅은 버려져야 마땅합니다. 농부는 이런 땅에 씨를 뿌리지 않습니 다. 씨앗 낭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5절을 보십시오.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농부는 땅을 가리지 않고 씨를 뿌립니다. 길가에도, 바위 위에도, 가시덤불 사이에도 아낌없이 뿌립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농부가 어리석어서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신비이자 복음의 역설입니다.
세상의 농사는 땅이 좋아야 씨앗이 자라지만, 하나님 나 라의 농사는 씨앗이 강력해서 땅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1. 씨앗의 정체: 살아있는 말씀, 예수 그리스도 오늘 본문 11절에서 예수님은 이 씨앗의 정체를 명확히 밝히십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마가복음 4장 26절에서는 이 씨앗을 '하나님 나라' 그 자체라고 설명합니다. 즉, 이 씨앗은 단순히 좋은 교훈이나 도덕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 씨앗은 살아있는 인격(Person),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설교의 황태자'라 불렸던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목사님은 이 본문을 설교하 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말씀의 씨앗은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다이너마이 트와 같습니다. 떨어지는 순간, 그 안에 내재된 하나님의 능력이 폭발하여 바위를 부수 고 가시를 태워버립니다. 우리가 밭을 가는 것이 아니라, 씨앗이 밭을 갑니다!“
그렇습니다. 이 씨앗은 죽은 씨앗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은 말씀합니다. "너 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 - 6 - 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 씨앗의 능력: 바위를 뚫고 가시를 태우다 여러분, 자연계를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속에도 -> 놀라운 씨앗들이 있 습니다. 깊은 산속, 거대한 바위 틈에 떨어진 작은 소나무 씨앗 하나를 상상해 보십시 오. 아무도 그곳에서 생명이 자랄 거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씨앗 안 에 생명이 있기에, 빗물을 머금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연한 뿌리가 단단한 바위를 쪼개고 거대한 나무로 자라납니다.
또 '로지폴 파인(Lodgepole Pine)'이라는 소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의 솔방울은 송진 으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어 평소에는 열리지 않습니다. 오직 거대한 산불이 나서 뜨거 운 불길이 지나갈 때에만 솔방울이 터져 씨앗이 나옵니다. 죽음 같은 불길을 통과해야 만 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인 이 씨앗은 어떻겠습니까? 예레미야 23장 29절은 선포 합니다.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내 마음이 너무 딱딱해서 은혜를 못 받아", "우리 교회는 상처가 너무 많아서(바위가 많아서) 안 돼", "먹고살기 바빠서(가시덤불이 많아서) 신앙생활 못 해"라 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자꾸만 '땅 탓'을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다. 네 땅이 문제가 아니라, 네 안에 심긴 씨앗이 문 제다." 진짜 씨앗,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심기기만 하면, 그분이 우리 마음의 길가 를 갈아엎으십니다. 그분이 우리 안의 상처라는 바위를 깨뜨리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옭아매는 맘몬의 가시덤불을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십니다. 3. 은혜의 선포: 주님이 하십니다 21세기 최고의 변증가였던 팀 켈러(Tim Keller) 목사님은 그의 저서 『예수를 만나다』에 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내가 변해서 신을 만나는 종교'가 아닙니다. '신이 내 게 찾아와 나를 변화시키는 종교'입니다. 우리가 좋은 땅이 되어서 예수님이 오시는 것 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좋은 땅으로 만드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 이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