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되기 어려운 세상

by 추장 posted Oct 2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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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안종설 집사님의 사진이 올라왔군요. 역시 大家 이십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지난 주엔 제가 外導를 좀 했습니다. 왜요? 다들 이상하게 저를 보시는데 그게 아닙니다.
그 날은 누구와 약속이 있어 속세(?)를 다녀왔습니다. 아랫 동네니까 여기에 비하면 속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꼭 바람을 피워야만 외도입니까? 그러면 친구네 놀러가서 하룻 밤 자고 왔다면 그건 동침 아닌가요?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게 있지요. 개는 다리가 네개다. 다리가 네개면 개 다(?) 이거 말이 되나요?
아니잖아요? 하여간 누구한 사람을 전도하고 왔습니다. 힘들더군요.

여기 언젠가 어느 일간지에서 읽었던 칼럼인데 제 맘에 와 닿더라구요. 맞는 말인것 같아서 옮겨왔습니다.


효자 되기 어려운 세상

내 친구 중에 “효자” 가 있다.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고 대부분의 친구들도 그를 효자라고 칭송한다.
그는 결혼한 뒤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이 부모님 댁 가까운 곳에 살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임원으로 퇴직할때까지 성실하게 살아온 그는 직장에 다닐 때에도 퇴근 하면 부모님 댁에 먼저 들렸다기 자기 집에 가곤 했다. 퇴직 후에는 집 근처에서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며 매일 부모님 댁에 들러 집안일도 돌보고, 부모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오곤 한다.
그런데 요즘 어머님의 건강이 좋지않아 숨도 차고 걸음 걷는 것도 힘들어 하시고 치매끼도 생기셨다고 한다.
그게 걱정스러운 그는 더욱 자주 들르고 더욱 오래 부모님 댁에 머무른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씩도 들른다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계속해 온 일과이기 때문에 그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부모님 댁에 가는 것을 당연한 일과로 삼아 지내고 있다.친구들 은 요즘 누구도 그렇게 극진하게 부모님을 모시는 아들이 없다며 칭송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은 효자 자격도 없고, 자식으로서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겸손해 한다.
그런 그가 남모르게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도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부모님 댁에 매일 가는 자신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퇴직 하고나서는 그게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다.
말 하자면 자신은 자기 가족들로부터 점점 “왕따”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 얘기를 아내에게 들려주며 효자를 왕따 시키는 가족들이 나쁘다고 비난 했더니 뜻밖에도 아내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 편을 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주변에 있는 친구들중
“효자” 남편하고 사는 부인들은 시부모 특히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에서 엄청 시달린다는 얘기를 여러 사례와 함께 들려 주었다. 어떤 부인은 남편하고 별거하고, 어떤 부인은
화병으로 시달리고 어떤 부인은 스트레스로 암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결혼 전에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내는 시부모와의 갈등을 겪어 보지 못했다.그런 아내에게 그럼만약 우리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내가 친구처럼 부모를 매일찾아 뵙느다면 어쩔거냐고 물었더니, “그러면 내가 너무 힘들 것 같다”는 대답이돌아왔다. 일주일에 한번 시부모 댁에 가는 것도 힘 들어 하는 아내들이 수두룩한데, 매일 가는 남편을 둔 아내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느냐는 것이다.
함께 안가더라도 아내의 심적인 부담은 마찬가지일 거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반문을 했다. 그럼 만약 우리 아들이 결혼해서 일주일에 한 번도 안 오고 한달에 한 번쯤 우리를 보러 온다면 어쩔거냐고 물었더니 “요즘 그런 아들이 어디 있으며. 기대하는 엄마도 정상이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우리 딸의 남편이 될 사위는 자신의 부모님을 얼마나 자주 찾아뵙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 그건 참 어려운
문제”라고 웃으며 대답 하는 것이었다.
아마 나와 아내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남편과 아내들은
이런 이중적인 가치관 속에서 부모와의 관계를 이어갈 것이다. 부모에 대한 사랑과 아내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가정안에서 점점 병립할수 없는 갈등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효자”와 “마마보이”라는 호징의 차이도 애매모호해졌다.예전에는 사회구성원의 가장 높은 덕목으로 칭송받던 “효”가 지금은 골치 아픈 문젯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효”의 기준도 예전과 지금은 천지차이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 노인 문제의 대부분은 부모들이 기대하는 효의 기준과 자식들이 제공하는 효의 기준이 다른 데서 생긴다.
내 친구는 현대의 효자로서 칭송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가정불화를 일으키는 마마보이로 왕따가 되어야 하는가,
참으로 “효자”되기 어려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