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 날짜 | 2026-0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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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송아지를 갈아 마시라
출애굽기 32:1-6, 19-20
[서론] 우상 공장의 가동: 좋은 것이 신이 될 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 32장의 참으로 기이하고 충격적인 장면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광란의 춤을 추고, 산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종 모세는 그 금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로 만들더니, 그 가루를 물에 타서 백성들에게 강제로 마시게 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 본문을 읽으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백성들 같으니라고! 어떻게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에 절을 할 수 있나? 나는 적어도 집에 불상을 두지도 않고, 점을 보러 다니지도 않으니 우상 숭배자는 아니야.“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오늘날 우리는 우상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장 칼뱅은 인간의 마음을 가리켜 "우상을 끊임없이 찍어내는 공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24시간 쉬지 않고 무언가를 숭배하도록 설계된 존재들입니다. 현대 기독교의 탁월한 변증가인 티머시 켈러 목사님은 우리에게 뼈아픈 진실을 알려줍니다. "우상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만들때,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궁극적인 것'이 된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돈'을 생각해 봅겠습니다. 돈은 좋은 것입니다. 가족을 부양하고, 이웃을 돕고, 선교를 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하나님이 안 계신 건 참을 수 있어도, 돈이 없는 건 못 참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때 돈은 '궁극적인 것'이 된 것입니다. 돈이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 내 인생의 '안도감의 원천'이 되고 '나를 지켜주는 구세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도리이며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자녀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고, 자녀의 실패가 곧 나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자녀는 더 이상 아들이나 딸이 아닙니다. 내 삶을 지탱하는 신, 즉 우상이 된 것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내 인생은 안전해. 하지만 이것이 없으면 내 인생은 끝장이야."라고 믿게 만드는 바로 그것. 내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두려워하고, 가장 의지하는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금송아지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악마를 숭배하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안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안전'을 하나님보다 더 갈망했기에, 그들은 결국 괴물을 만들어내고 말았습니다. 오늘 이 아침,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 공장에서는 지금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습니까? 말씀의 거울 앞에서 우리의 금송아지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Page 1] 본문의 문제: 불안이 만든 '조작된 하나님' 자, 이제 우리의 시선을 시내산 아래로 옮겨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그들은 지금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황량한 광야 한복판에 있습니다. 먹을 것도, 마실 물도 보장되지 않은 '생존의 위기'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들을 이끌고 홍해를 건넜던 지도자 모세는 "잠시 다녀오겠다"며 시내산으로 올라갔는데, 하루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습니다. 무려 40일이 지났습니다. 고대 근동의 인식 속에서, 식량도 없이 불타는 산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40일 동안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백성들에게 모세의 부재는 단순한 지도자의 실종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자신들을 연결해주던 유일한 중재자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부재'로 느껴졌고, 이제 곧 광야에서 다 죽게 되었다는 '숨 막히는 공포'가 진영 전체를 덮쳤습니다.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아론에게 몰려가 외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
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출 32:1) 여러분, 이들의 외침이 들리십니까? 이것은 "우리는 하나님이 싫다, 하나님을 버리겠다" 는 반역의 소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는 불안해 미치겠다. 제발 우리를 안심시켜 줄 무언가를 내놓으라"는 비명입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불안을 잠재워 줄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고, 통제 가능한 하나님'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금송아지입니다. 아론은 백성들의 금 고리를 거두어 송아지 형상을 만듭니다. 왜 하필 송아지입니까? 그들이 애굽에서 늘 보았던 풍요와 힘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목할 점은 4절과 5절입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바알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여호와)이로다...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기가 막힌 일 아닙니까? 그들은 금송아지에다가 하나님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것은 혼합주의입니다. 내 욕망과 불안을 채우기 위해, 애굽의 방식(금송아지)에 하나님의 이
름표만 갖다 붙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내가 조작해 낸 하나님', 내 불안을 통제해 줄 '안전장치'를 섬긴 것입니다. 6절을 보면, 그들은 이 금송아지 앞에서 먹고 마시며 "뛰놀았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뛰놀다(차하크)'라는 단어는 성적인 방종과 음란한 유희를 포함합니다. 불안이 해소되자 그들은 거짓된 평안과 쾌락에 취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금송아지 사건의 본질은 배교가 아니라 '불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내 손에 쥐어지는 확실한 '보증수표'를 만들려 했던 것. 그것이 바로 광야의 이스라엘이 범한 죄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광야 같은 이민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Page 2] 우리의 문제: AVK의 금송아지는 '안전'이다. 그렇다면 2026년, 이곳 앤텔롭밸리 한인교회의 금송아지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
들이 광야에서 그토록 불안해하며 '눈에 보이는 신'을 찾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이 낯선 이민 사회의 광야에서 늘 불안과 싸워왔습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일했습니다. 언어가 서툴러서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돈이 없어서 서러움 당하지 않으려고, 우리 자녀들만큼은 기죽지 않게 하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우리에게 '안전한 삶', '재정적 안정', '자녀의 성공'은 너무나 절실하고 소중한 '좋은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좋은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그것 없이는 내 인생이 무너진다고 믿는 순간, 그것은 우리를 집어삼키는 금송아지가 되었습니다.
저부터 회개하며 고백합니다. 저의 금송아지는 '건강'이었습니다. 사역을 내려 놓고 수술 후 지난 3개월 동안 저는 지독한 육체의 가시와 싸워야 했습니다. 수술 후 후유증 때문인지 콩팥 기능에 문제가 생겼고, 통풍이 심하게 찾아왔습니다.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그 고통 속에서, 저는 걷지 못해 목발을 짚어야 했고, 때로는 방바닥을 기어다녀야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보다 병원을 더 찾았습니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습니
다. 통증을 잡기 위해 콜킨을 먹고, 스테로이드를 쓰고, 주사를 맞으면서 저는 오직 "안 아픈 것"에만 목숨을 걸었습니다. 지금도 제 발가락이나 발목 관절에 약간의 통증만 느껴지면, 제 온몸과 마음은 순식간에 긴장하고 얼어붙습니다. 기도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내게 우상은 건강이었구나." 하나님이 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머리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내 건강이 무너지면 내 인생도, 목회도 다 끝장난다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건강을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하고 숭배했던 저의 모습, 그것이 바로 제가 만든 금송아지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만의 이야기일까요? 팀 켈러와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은 우리 마음속 우상을 찾아내기 위해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이 질문 앞에 여러분의 금송아지를 대입해 보십시오.
첫째, 당신이 마음이 아프거나 지쳤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는 '피난처'는 어디입니까?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여러분을 위로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넷플릭스입니까? 스마트폰입니까? 술 한 잔입니까? 아니면 쇼핑입니까?
"하나님, 너무 힘들어요"라고 기도하기보다, 냉장고 문을 열고 음식으로, 혹은 드라마, 풋볼로 도망치고 있다면, 바로 그것이 당신의 '가짜 하나님'일 수 있습니다.
둘째,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공포'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단순한 걱정을 넘어, "이것 무너지면 내 인생은 끝장이야"라고 생각하며 전신이 마비되는 듯한 공포를 주는 대상은 무엇입니까? 통장 잔고입니까? 자녀의 삶입니까? 아니면 저처럼 건강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돈을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면, 우리의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입니다. 그 과도한 두려움이 바로 우상 숭배의 증거입니다.
셋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빈 시간, 당신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어디로 흘러갑니까? 가만히 멍하니 있을 때, 여러분의 머릿속을 꽉 채우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은 '우상 공장'과 같아서, 내 마음의 주인을 향해 저절로 생각이 흘러갑니다. '어떻게 하면 더 인정받을까?', '어떻게 하면 노후 자금을 더 모을까?', '어떻게 하면 내 자식이 더 성공할까?' 우리의 무의식이 향하는 그곳이, 지금 내 마음이라는 전쟁터에서 승리하고 있는 진짜 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2년 우리 교회가 흔들릴 때 우리가 느꼈던 감정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아픔이었습니까, 아니면 내 안락한 종교 생활이 깨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었습니까?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실상은 '내 삶의 안전'이라는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 시간, 아프지만 우리의 금송아지를 정직하게 직면합시다. 병을 인정해야 의사에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Page 3] 본문의 은혜: 거룩한 파괴와 해독제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이 광란의 축제 현장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그가 취한 행동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친히 써주신 십계명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산산조각 냅니다. 여러분, 이것을 단순히 모세가 화를 참지 못해 저지른 '혈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학자 피터 엔스는 이것을 "언약의 갱신을 위한 거룩한 파괴"라고 말합니다. 이미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과의 계약은 깨어졌습니다. 모세는 깨진 돌판을 통해, "너희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렇게 박살 났다!"는 영적 현실을
눈앞에 보여준 것입니다. 거짓된 평화를 깬 것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다음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
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
성도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불에 태우고, 빻아서 미세한 가루로 만들고, 그것을 물에 타서 강제로 마시게 했습니다. 입안에서 씹히는 쇠가루의 비릿함, 목구멍을 넘어가는 그 껄끄러움... 백성들은 아무 말 없이 그 쓴 물을 마셔야 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너무 잔인하신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지독한 사랑'입니다. 첫째, 이 과정은 우상의 실체를 폭로하는 것입니다. 금가루를 물에 타서 마시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몸은 금을 소화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위장과 대장을 거쳐 결국 뒤로 나옵니다. 네, '배설물'이 됩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보라! 너희가 '우리를 인도할 신'이라며 숭배했던 저 화려한 금송아지의 끝을 보라. 너희가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그것은, 결국 너희 뱃속에 들어가 똥이 되어 나올 뿐이다.“ 사도 바울이 세상의 모든 자랑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던 고백이 바로 이 장면과 겹쳐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목숨 거는 돈, 명예, 성공... 하나님 없는 그 모든 것은 결국 배설물에 불과합니다.
둘째, 이것은 죽이는 독약이 아니라 살리는 '영적 해독제(Detox)'입니다. 여러분, 아이가 실수로 독약을 삼켰다고 합시다. 부모는 어떻게 합니까? 아이의 입을 벌려 억지로 토하게 하거나, 쓴 약을 먹여서라도 그 독을 씻어냅니다. 아이가 울고불고 해도 멈출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적당히 덮어두면 그것은 우리 영혼의 암 덩어리가 되어 결국 우리를 죽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의 가루를 마시게 함으로써, 그들이 저지른 죄의 쓴 맛과 비참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셨습니다. "이 죄가 얼마나 쓰고 더러운 것인지 너희 내장 깊숙이 기억하라. 그래야 다시는 이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는다." 모세가 내민 그 쓴 잔은 형벌이 아니었습니다. 거짓 신에게 중독된 백성들의 몸속에서 독소를 빼내고, 그들을 다시 거룩한 하나님의 신부로 살려내기 위한 '거룩한 수술'이었습니다. 이 아픈 사랑을 깨닫는 자만이 우상을 버릴 수 있습니다.
[Page 4] 세상의 은혜: 진노의 잔과 생명의 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의 백성들을 보며 두려움에 떱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지난 한 주간, 아니 지난 평생 동안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해 수많은 금송아지를 만들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율법대로라면, 우리도 우리 죄의 가루, 그 심판의 쓴 물을 남김없이 마셔야 합니다. 그것이 공의입니다. 그러나 복음에는 위대한 반전이 있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직접 몸으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 쓴 물을 마시고 배설하며 수치를 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우리에게는 우리 대신 그 잔을 드신 분이 계십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을 기억하십니까?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고민하며 주님은 이렇게 절규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
옵소서" (마 26:39)
예수님이 그토록 피하고 싶어 하셨던 그 '잔'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육체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잔 속에는 바로 저와 여러분이 평생 만들어낸 우상의 오물들, 우리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안전을 더 숭배하며 지은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금송아지를 만든 우리가 그 독배를 마시고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망치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주님은 우리가 마셔야 할 저주와 심판의 쓴 잔을 십자가 위에서 남김없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들이키셨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그 독배를 마시고 찢기셨기에, 오늘 저와 여러분이 마시는 잔은 달라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받는 잔은 '심판의 잔'이 아니라 '생명의 잔'이며 '구원의 잔'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두려움 없이 회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2026년 새해, 우리 앤텔롭밸리 교회 안에 있는 '안전'이라는 우상, '두려움'이라는 우상, '혼합주의'라는 금송아지를 예수의 이름으로 갈아 마십시다. 우리 다 함께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합시다. "나는 돈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나는 성공하지 못해도 살 수 있지만,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지난 2년의 '성실한 실패'를 딛고, 이제는 내 힘으로 쌓은 금송아지가 아니라, 십자가의 보혈 위에 세워지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환도뼈가 부러지고, 우리의 금송아지가 가루가 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진짜 부흥, 진짜 생명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시내산 아래, 가루가 된 금송아지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실상은 내 통장의 잔고가 주는 안전을 더 믿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라 말하면서도, 사람의 숫자와 건물의 안위를 더 두려워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이 화려한 금송아지가 하나님 앞에서는 한 줌의 가루요, 배설물임을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주여, 이 시간 성령의 해머로 우리 안의 견고한 우상을 깨뜨려 주시옵소서.
우리가 그토록 의지하던 거짓 안전을 예수의 이름으로 갈아 마시고,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정결한 신부가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지난 2년, 성실했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 앞에 내려 놓습니다. 이제는 사람의 힘으로 쌓아 올린 금송아지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 위에 세워지는 진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곳이 아니라, 사명을 위해 생명을 거는 거룩한 제단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진노의 쓴 잔을 다 마시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번호 | 제목 | 예배 날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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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밭, 갈아엎어져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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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8 |
| 2 | 환도뼈가 부러져야 삽니다 | 2026-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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